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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역사

[체코역사] 기본 개요 정리 5. 후기 프례미슬 시대 Přemyslovci

by Praha Love Me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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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역사 기본 개요 정리 다섯 번째 : 초기 프례미슬 시대 Přemyslovci

 

1. 바츨라프 1세 - Václav l. (1230 - 1253)

1228년 젊은 왕으로서 대관식을 마친 후 프례미슬 Přemyslovci 왕조 4번째 왕으로 오른다. 그는 프례미슬 오타카르 Přemysl Otakar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의 둘째 아들이다. 왕위 즉후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 2세 Fridrich II. 와 갈등이 생긴다. 

1940년대 초에는 훈족들의 침입하여 독일 연맹군과 함께 훈족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낸다. 독일과의 국경 지역에서 독일과 체코 간의 갈등 문제로 독일 지역을 식민화하는 정책을 편다. 사냥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자주 사냥을 나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냥에서 한쪽 눈을 잃었기 때문에 외눈박이 왕으로도 불린다. 

 

2. 아네즈카 프레즈미슬로브나 Anežka Přemyslovna 

바츨라프 1세; Václav 1. 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불우한 결혼 생활 후 그녀의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투옥되는 불우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베드로 수도원;sv. Ducha Na Františku의의 기초를 다졌다.  

 

3. 프례미슬 오타카르 2세 - Přemysl Otakar ll. (1253 - 1278)

바츨라프 1세; Václav 1. 와 쿤후타 스타우흐스카; Kunhuta Staufska의 아들로 철과 황금의 왕으로 불린다. 1247년 아버지로부터 모라비아 후작을 인계받고 같은 해 체코 왕으로서 지방 영주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체코 군주의 통치 중 가장 큰 영토 확보했던 왕이다.  체스케 부뎨요비체; České Budějovice, 뎨췬; Děčín, 모스트; Most, 콜린; Kolín, 피섹; Písek 등의 프라하 주변 도시들을 설립했다. 오스트리아의 Markéta Babenberská 가 첫 번째 부인이다. 크레센부른; Kressenbrunn 전투와모라비아 들판의 전투로 유명하다. 1260년 크레센부른; Kressenbrunn 전투에서 벨라 우헤르스키; Béla Uhersky (아르파드 왕조의 공작)와 전투 후 승리한다. 1273년 제4차 체코-헝가리 전쟁을 벌인다. 1278년 8월 26일 모라비아 들판 전투에서 패하고 전사하게 된다. 사망 후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에 안치된다. 프례미슬 오타카르 2세는 체코의 가장 위대한 왕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오타까르2세-전사-삽화
오타까르2세-전사-삽화

 

4. 귀족

프례미슬 시대에 귀족의 개념이 보다 명확하게 설립된다. 체코 귀족들은 토지로써 구분되는데,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반발 이후 영토 싸움의 규모가 더 커지게 된다. 영토에 따른 영주의 자격이 결정되는 구조의 기원이 마련된다. 이때 따라 토지 소유권 및 상속 개념의 정립된다. 귀족들의 권력의 강화됨에 따라 군주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전에는 국가와 하인의 관계였으나, 정치, 경제적 협력 관계로 변화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왕권 - 귀족 - 교회의 힘의 분배가 일어나게 된다. 

 

5. 렘베르카의 즈디슬라바 Saint Zdislava, Lemberk 

체코의 귀족 여성으로 알려진 체코의 수도원과 병원 설립자이다. 1995년에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6. 오페라 "체코의 브라니보뤼" Braniboři v Čechách 

체코 작곡가 베드뤼 스메따나; Bedřich Smetana의 첫 번째 오페라 음악이다.  오페라의 주제는 프례미슬 오따까르 2세; Přemysl Otakar ll. 사후 보헤미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1862 - 1863년에 작곡된 곳으로 추정되며 1866년 1월 5일 프라하 임시 극장에서 첫 공연에 올랐다. 

 

7. 바츨라프 2세 - Václav ll. (1283 - 1305)

프례미슬 왕조 Přemyslovci 의 6번째 왕으로 최초의 폴란드 또한 포함하는 왕이다. 프례미슬 오타카르 2세; Přemysl Otakar ll. 의 아들이다. 그의 두 번째 아내는 꾼후타 우헤르스카; Kunhuta Uherská 이다. 1278년 모라비아 들판 전투에서 프례미슬 2세가 사망 후 임시 왕권을 가지게 된다. 본인 12세일 때 정부 인수하고 그 후 1282년 보헤미아에 대 기근이 왔을 때 통치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하여 바츨라프 2세; Václav ll. 의 어머니 자비슈; Záviš가 주로 정치를 맡게 된다. 쿠트나 호라; Kutná Hora 지역에서 은 광물 발견되면서 은 자원의 발전으로 전쟁과 무력보다는 수출을 통한 외교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8. 바츨라프 3세 - Václav lll. (1301 - 1306)

체코, 폴란드, 헝가리의 왕이다. 프례미슬 왕조 Přemyslovci의 마지막 왕이다. 1298년 아홉 살에 헝가리 왕 안드레아 3세의 딸과 약혼했다. 1301년 베오그라드에서 12세에 헝가리의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약한 왕권 때문에 지속적으로 귀족들과 마찰이 있었고 폴란드의 정세 불안을 왕권이 계속 약화되자 폴란드에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정벌을 떠나게 된다. 가는 여정 중

체코의 동쪽 도시 올로모우츠 Olomouc에 방문했을 때 암살당하게 되는데 현재까지도 누구의 소행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귀족들과의 잦은 마찰이 있던 관계로 귀족들의 계획일 것으로만 추측되고 있다. 1306년 8월 4일 16세 나이에 사망하고 이로서 프례미슬 시대는 막을 내린다. 바츨라브 3세는 사후에 Olomouc 대성당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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