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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역사

[체코 인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와 튀코 브라헤

by 쁘라하 말고 체코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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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이자 점성가의 동상

프라하 6 지구에는 두 명의 사람이 서 있는 동상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1546년에서 1601년 사이에 살았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 Tycho Brache와 1571년에서 1630년 사이에 살았던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입니다. 이 조각품은 이들의 이름을 딴 김나지움(중등교육기관) 앞에 1984년 세워졌습니다. 조각상의 거칠고 투박한 표현이 예술적입니다. 터프하고 날렵한 손길로 만들어진 동상이라 멀리서 보아도 눈이 띄는 외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점성술, 천문학, 수학을 할 때 필요한 도구를 손에 쥐고 하늘을 바라보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튀코브라헤-요하네스케플러-동상
튀코브라헤-요하네스케플러-동상

 

루돌프 2세의 지원을 받던 천문학자들

요하네스 케플러와 튀코 브라헤는 체코인은 아니지만 체코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체코가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연합국가의 영향 아래 있던 시기에 활동했던 천문학자들로 루돌프 2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덴마크인, 독일인입니다. 다만 보헤미아 중심으로 활동을 했고 루돌프 2세 또한 체코의 역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대한 여러 이야기가 체코의 역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천문학자, 수학자, 점성가, 화학가 등으로 불립니다. 이 둘은 프라하에 도착하여 루돌프 2세로부터 많은 지지와 후원 속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루돌프 2세는 과학뿐 아니라 예술, 문학 등에도 관심이 많아 나라의 경제와 군사력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발전시킨 왕으로 불립니다. 그러한 배경 덕분에 이 두 사람은 체코 역사에서 중요한 천문학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두 천문학자 소개 

  •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독일인으로 수학자, 점성사, 천문학자, 복음주의 신학자이며 안경점 또한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루돌프 2세의 궁정에서 몇 년 일했기 대문에 체코 문학에도 등장합니다. 그는 유년시절 허약한 체질이었지만 혜성과 일식을 본 후 천문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수도원 학교 및 개신교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지속합니다. 그는 복음주의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지만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지지했고 그와 유사하게 생각하는 학생들과 교유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성직자가 되고자 했으나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이후 우주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조언에 따라 프라하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게 됩니다. 프라하에서 그는 튀코 브라헤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은 서로의 다른 재능을 보완해가며 공동작업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브라헤는 뛰어난 관찰자로 별 관찰에 능했지만 요하네스는 수학을 잘하는 대신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브라흐가 1601년 먼저 사망한 후 케플러는 황실 수학자로 임명되어 연구를 계속합니다. 그는 브라헤 사망 후에도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어 더 정교한 천문 시스템을 구축해 갑니다. 1604년 케플러는 현재 케플러의 별이라고 명명된 초신성을 발견하고 관찰합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기초하여 처음부터 행성이 동일하게 지나가는 원형궤도의 조합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지 않고 행성의 실제 궤도를 처음으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오랜 연구 끝에 그는 화성의 궤도를 확인하고 화성의 궤도 속도가 궤도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설명해냅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그의 모든 연구는 1609년 Astronomia nova라는 책에 요약합니다. 이 책에는 케플러의 제1법칙과 제2법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튀코 브라헤 Tycho Brache : 덴마크 인으로 천문학자, 점성가, 연금술사 등으로 불립니다. 그는 망원경  발명 후 별을 가장 정확하고 정밀하게 관찰했던 과학자로 간주됩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철학, 수사학을 공부하고 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는데 특히 연금술, 점성술에 몰두합니다. 또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화학 공부도 계속하게 됩니다. 그는 추후 천문대도 구입하여 별자리 연구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는 덴마크의 왕이 기증한 섬 전망대에서 20년이 넘게 일했지만 덴마크의 새로운 오아 크리스천 4세가 책봉된 후 왕실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유럽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루돌프 2세와 요하네스 키플러와 만나게 되고 프라하에 초청되어 황제 천문학자로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 하는데 아직까지 그의 죽음에 대한 다양한 설과 전설 등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 했을 때 사람들은 수은 중독 증상이 있었다고 말했고, 그것이 연구 과정에서 실수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덴마크 황실의 소행인지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왜냐면 브라헤의 친척 또한 덴마크 왕실의 계략에 따라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죽음에 대해 의문이 많았습니다. 2009년 덴마크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체코 정부에 유해 재발굴과 공식적인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2010년 프라하의 병원에서 전문의들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수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덴마크 왕실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공식적으로 판명이 났지만 300년이 넘게 브라헤의 죽음과 관련된 논의가 오간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천재적으로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천문학자였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위치 : 천문학자 점성가 요하네스 케플러와 튀코 브라헤의 조각상 기념비 - Hračany, 169 00 Praha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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